2016년 6월 19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민족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 한국 교회는 1965년부터 매년 6월 25일이나 그 전주일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날 한국 교회는 마음을 모아 남북한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는 단군 이래 현재까지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과 집단에서 분열과 갈등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갈라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상호 비방과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과 갈등, 심지어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혐오와 갈등까지 경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은 다른 나라와 민족들에게도 여러 방식으로 보편적으로 존재해 오는 것입니다. 민족간의 갈등과 대량 학살, 백인들의 유색 인종에 대한 편견과 집단적 무시, 심지어는 노예제도를 통한 비인간적 만행까지도 우리 인류의 역사 안에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인들 역시 이러한 차별과 갈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후 가나안의 모든 민족들을 죽이고 정복하는 주체로서 유다인들이 묘사되었지만, 후에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는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후 유다인들은 거의 2000년간 나라가 없는 민족으로서 숱한 모욕과 박해, 심지어 나치의 대량 학살의 피해자로서 고통을 받다가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박해하는 폭력 국가로서 다시 역사 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힘이 있는 이들이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군림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는 폭력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이러한 인류의 폭력성에 정면으로 저항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돌아가실 것을 이미 아셨으면서도 자신에게 가해질 폭력과 죽임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분은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을 통해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심지어 그분은 돌아가시기 직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새 계명까지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분열, 편견, 폭력, 미움, 모욕, 무시, 차별, 혐오에 대항하여 존중, 일치, 용서, 사랑, 치유, 통합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루카 6, 37) 이 말씀이 분명히 강조하듯이 아무리 상대방이 죽을 죄를 지은 큰 죄인이라 하더라도 우리 편에서는 그를 심판하고 단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심판과 단죄의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단지 자신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단지 자신보다 안 좋은 고등학교, 안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단지 자신보다 낮은 수능 성적으로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이 다른 이들을 폄하하고, 무시하고, 차별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와 전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 분열의 양상, 상호간의 불필요한 비교와 그로 인한 무시와 폭력은 삶 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일치와 평화,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 악신의 길, 사탄의 행동 방식인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같은 신앙을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길을 충실히 따라 사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분열, 편견, 폭력, 미움, 모욕, 무시, 차별, 혐오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께 강조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단 한번이라도 여성을 무시했다면, 특정 지역 사람들을 무시했다면, 타 고등학교나 타 대학 출신들, 다른 이웃들을 무시했다면, 그렇게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면서 근거없는 우월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통해 주님께 용서를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길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길어야 100년동안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에겐 시간이 모자랍니다. 우리가 존중과 일치의 길, 용서와 사랑의 길, 치유와 통합의 길을 따라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는 모든 지역간의 갈등 해소, 남녀간의 갈등 해소, 빈부 격차의 점진적 해소, 그리고 남북통일에 필요한 합당한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서로 존중합시다. 서로 용서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의 본질인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