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3 사순 제 5주일 미사강론(최성영 신부)



요한복음 8,1-11

누군가가 나를 위해, 그리고 나 대신에 죽었다면, 그 사람의 어떤 삶을 살아갈까? “예수가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예수회 신학자 칼 라너가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수난과 죽음에 대한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했는지? 그분의 죽음이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를 가슴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이, 바로 사순의 핵심입니다. 사순은 그저 죽음으로 끝나는 여정이 아니라 생명으로 건너가는 여정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부활로 가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대학에 들어온 우리 새내기들, 새롭게 개학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나를 넘어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은총을 청하면서 이 미사 봉헌합니다.


1. 상황(context)

먼저 한 여인이 죽음 앞에 놓여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은 당시의 율법에 따라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합니다. 이 여인이 살아날 가능성은 제로(0%) 입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이미 죽은 여인입니다. 제 기도 안에서 본 그 여인의 눈빛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 또한 아주 난처한 상황입니다. 울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덫을 놓았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는데, 우리의 모세법에 의하면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든지간에 예수님을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1) 만약 그 불쌍한 여인을 용서해주고 살려주라고 한다면 율법인 모세법을 어기는 범법자가 됩니다. (2) 만약 그래, 율법에 따라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여라, 하고 한다면 예수님은 스스로에게 모순이 됩니다. “자기모순”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용서하라고, 사랑하라고 말을 해왔거든요.

=>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이 여인을 이용해서 예수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돌에 맞아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갈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인가 쓰고 계셨다.” 라고 복음은 전합니다.

2. 오늘 복음을 소재로 한 성화를 보면, 예수님이 땅 바닥에 십계명을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십계명을 보고,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 그곳을 떠났다고.

영화 Passion of the Christ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면, 예수님이 땅에 금을 긋습니다. 마치 딱딱한 나뭇가지로 선을 긋듯이 금을 긋습니다. 영화장면을 보면, 금을 그을 때 흙과 작은 돌멩이들이 튀어 오르게 효과를 처리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아하”라는 감탄사가 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올라오는 생각은, “너희들 여기에 넘어 오지 마.” 영화를 보면, 한쪽에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 그리고 군중들이 돌멩이를 쥐고서 그 여인에게 던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 혼자 땅바닥에 엎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들 한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금을 그음으로써, 그네들을 두부류로 나눕니다. 그 금은 바로 그 여인을 보호하는 선, 보호구역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너희들, 넘어오지 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서 있던 자리, 그 자리는 인간을 율법에 따라, 가차없이 처리해 버리는 자리입니다. 반면에 그 여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 불쌍한 여인이 있던 자리는 하느님의 용서와 은총이 내리는 자리입니다. “죄가 많은 곳은 은총이 풍성하게 내렸다” (로마 5,20) => 우리 안의 약함의 자리, 그림자, 죄스러움의 자리는 성스러운 자리입니다.

3.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이 하도 대답을 재촉하기에, 예수님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죄가 많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을 오래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인간의 삶이 죄 한 점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약함,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인을 돌로 쳐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주었습니다. 너무나도 후련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여인에게 너의 죄를 묻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느냐고 묻고는, "그래, 어서 돌아가라, 나도 제 죄를 묻지 않겠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말라"

4. “마리아 마리아” 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바로 막달라 마리아를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이 복음 장면이 그 뮤지컬의 중심 장면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 말씀, 죄짓지 말라, 이 말씀을 배우들이 안무를 하면서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죄짓지 말라, 죄짓지 말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겁니다. 물론 뮤지컬의 특성 상, 음악에 맞추어 노래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제 마음은 뭔가가 좀 불편했습니다. 한번이면 될 텐데, 예수님도 단 한번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이 대사가 이 복음의 중심 메시지가 아닐텐데 ... 이 복음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와 자비에 관한 것인데.. 그래서 “죄 짓지 말라, 죄 짓지 말라, 죄 짓지 말라..”그렇게 반복할 때, 제가 불편했습니다.

5.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피정자의 관상기도 내용입니다. 복음대로 그렇게 사람들이 떠나고, 예수님이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라는 말씀을 듣고서, 그 여인이 사람들이 놓고 간 돌멩이 중에서 가장 큰 걸 하나를 집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리아, 너 왜 돌을 집는 거냐?”라고 물으시니까, 마리아는 “주님, 저는 이 돌에 맞아 죽어야만 했어요. 하지만 이제 돌을 집에 가져가서, 이걸 보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려구요.”

이렇게 말하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마리아, 너 그 돌을 내려 놓아라. 너는 앞으로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너를 향한 나의 사랑 때문에... 나에 대한 너의 사랑 때문에...” 그래서 마리아는 그 사랑 때문에, 예수가 죽은 다음에도 예수를 찾아 무덤가를 헤매고 다녔을까? 이 여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만난 여인입니다.

더욱이 그 여인이 떠나간 뒤에, 예수님은 그 여인이 죄를 짓나 안 짓나에 관심이 갔을까?
아닙니다. 저의 관심은 그 여인은,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 때, 무슨 힘으로 살아갔을까? 이 여인은 예수님을 무엇으로 체험했을까? 용서로, 생명으로, 사랑으로 ... 우리는 예수님을 무엇으로 만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