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4 사순 제 1주일 미사강론(김산춘 신부)



재의 수요일부터 단식과 금육과 함께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이상하게도 단식하라고 하면 저는 이미 화요일 저녁부터 배가 고파집니다.
가만히 있던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일 년 중 악마가 가장 분주한 때가 사순절일 것입니다.
道高魔盛. 하느님으로 멀어져있던 신자들이 齋戒하여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려는 것은 악마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제부터 복음을 전하시려고 요르단 강에서 목욕재계[세례]하시자마자 악마는 그것을 막고자 광야로 가신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1) 첫 번째 유혹은 육욕의 충족입니다.

여기서 식욕에 대한 유혹은 육적인 모든 갈망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예수회원들의 식탁 화제는 대개 두 가지라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것과 원장에 대한 불평.
실제로 먹지 않아도 먹는 이야기만 하면서도 밤을 샌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잘 안하는 말이지만 예전에 양아치들은 “너 숟가락 놓고 싶어.” 라는 위협어를 잘 했습니다.
먹는 것은 곧 생명과 직결되는 근본적인 일입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도 먹고 먹기 위해서도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잘라 말합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4,34]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갑니다.

(2) 두 번째 유혹은 마음의 헛된 야망입니다.

사실 한 순간에 모든 세상을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虛像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實像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幻影일 뿐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는 무관한 나 아닌 것입니다.
김 형영 시인은 자기 명함에 이를 경계하고자 “헛것을 따라다니다 헛것이 되었구나.”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섬기고 한분이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잡신을 경배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가 없는 짓입니다.
그것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종종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라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권세와 영광은 오직 하느님께만 있습니다.

(3) 세 번째 유혹은 영적인 혼란입니다.

악마는 가장 낮은 곳으로 우리를 추락시키려고 가장 높은 곳에 우리를 세워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몸을 던져보라고 부추깁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보고만 계시지 않을 거라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기적을 바라며 하느님을 시험해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유다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내려와 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내려올 수도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선한 영이고 무엇이 악한 영인지를 분별하는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 대신 먹을 것만 찾고, 물터에서 하느님을 시험해보고, 하느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긴 것처럼, 연약한 우리 인간들은 대개 이 세 가지 유혹에 굴복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성경 말씀[신명기]을 가지고 이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라고 가르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