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학년도 1학기 개강미사(옥현진 주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오늘 서강대학교의 개강미사에서 주례와 강론을 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총장님, 이사장 신부님, 그리고 예수회 신부님들과 교수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회와의 연관을 생각해본다면, 박사과정 안에서 지도교수님도 그렇고, 저의 고해사제도 모두 예수회 신부님이셨습니다. 이렇게 서강대학교에서 개강미사에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인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잡은 주제는 바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 대부분을 무엇 하는데 보낼까요? 얼마 전 뉴스에서 대한민국의 성인이 1년에 책을 한권도 보지도 않는다는 통계를 본 적 있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도 보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임에도 우리는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면서 우리의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킵니다. 주변에도 돌아보면 스마트폰에 하루 종일 얼굴을 묻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보지만, 책을 읽는 모습은 이제 보기 정말 힘들어졌습니다. 아마 상아탑에서 학문 추구에 열중인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이러한 내용과 연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행복함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대로 채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 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물질과 권력, 명예를 지닌 사람을 행복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단식과 기도 이후에 마귀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때 마귀가 제시한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행복해 보입니다. 넓고 큰 집에 멋진 수입자동차에 상상할 수도 없는 연봉에 그러한 바탕에서 이뤄지는 소비는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남들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있기에 행복할까요?

우리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유치원 때부터 명문 유치원에 합격하길 고대하고 어릴 적부터 입학 전쟁을 치룹니다. 초등학교도 마찬가지구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사제들에게 부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공부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야지만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만 좋은 연봉에 행복한 생활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은 공부를 통해서라고 대다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 때 가져야할 우정보다도 친구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경쟁의 전쟁터를 만들어 버립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눌 여유도 없이 공부와 씨름하다보면 젊은 청춘이 훌쩍 지나버리고 참고 인내한 만큼 원하는 대학을 가게 되더라도 또 다른 넘어야할 산이 있습니다. 취업이라는 산은 미래의 삶을 결정하기에 더욱 치열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중·고등학생 때 경쟁에서 밀려난 친구들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게 됩니다. 또한 대학에 와서도 취업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스펙을 쌓아야 하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를 위한 시간이 어릴 적부터 없어져 버립니다. 초중고는 대입을 위해서 대학에 와서는 취업을 위해서 거의 16년 가까이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나 하고 생각되지 않을까요? 저는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다녔고 늘 성당에서 놀고 복사하면서 사제의 꿈을 꾸었습니다. 중학교도 당시 읍에 있는 학교를 다녔고 평범했지만 성당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는 개신교 학교에서 다녔고 되고 싶었던 사제의 꿈을 위해 시험을 앞두고도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신학교에 들어갔고 뛰어남이 아니라 성실함을 인정받아 유학생활을 하였고 역시 하느님의 도우심과 성실함으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주교님은 행복하십니까? 하고 물으신다면 “예”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물질이나 명예, 권력을 향하여 살지 않기에 행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에 행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이렇게 미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많은 신자들로부터 넘치는 환대와 사랑을 받고 있기에 더욱 행복합니다. 욕심을 비워내면 행복합니다. 두발을 땅에 딛고 살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선을 선택하고 생명을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복음적 가치를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요?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의 영상을 보겠습니다.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 영상 바로 보기

전재용 선장의 삶은 행복할까요? 그동안의 선택에 대한 회한은 없었을까요? 분명히 힘든 십자가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년이 지나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았고 본인의 말대로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말은 진한 감동으로 전해집니다. 전선장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질보다 소중한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며 이 관계를 통해 사람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평생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보낸 후에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재앙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니라 소속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병은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속되기를 애타게 열망하면서도 스스로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고 합니다. 행복은 나만의 행복을 지시하지 않습니다. 나의 행복이 다른 이에게도 행복이 되고, 다른 이가 나로 인하여 행복감을 느낄 때 나의 행복 또한 커지게 됩니다.

저는 아직까지 제 가슴에 세월호 벳지를 달고 다닙니다. 곧 2주기가 가까워져 오시지만, 그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 벳지를 달고 다니는 것은 저만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새롭게 변화된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볼 영상은 아주 짧은 영상입니다.

두 번째 영상 바로 보기

맹인이 거리에서 자신을 도와달라는 문구를 가지고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 문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도와주세요” 그런데 한 여인이 다가와서 문구를 조금 고칩니다, 사람들은 고친 문구를 보고서 더 많은 돈을 맹인에게 줍니다. 맹인은 문구를 어떻게 고쳤냐고 묻지요. 그 여인이 고친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그러나 저는 볼 수 없네요.” 단순히 말의 뉘앙스를 바꿈으로써 사람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뀐 말을 통해 사람들은 맹인의 상황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맹인을 도와준 여자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함께 나눌 줄 알았고, 그리 큰 수고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어려운 이를 도왔습니다. 이는 작으면서도 큰 변화이지요.

인간의 두뇌는 8가지 다중지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제레미 리프키는 21세기는 공감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지능 가운데 인간친화지능과 자기성찰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똑똑함을 보여주는 데는 여러 가지 재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은 언어와 수학 위주의 단일 지능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라본다거나 예술적인 자질과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더 필요한 능력임에도 불구하구요.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은 공감능력, 창의력, 독창성입니다. 학계에서 통용되는 다중지능은 모두 8가지입니다.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 등입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신학교에서 교수를 하기 전에, 한 일류 대학의 강의실을 찾아가 청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경험이 아주 가슴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1/3의 학생은 아주 몰두해서 수업을 듣지만, 1/3은 다른 것을 하고, 또 다른 1/3은 아예 잠을 자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서강대학교 수업의 모습은 이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학문적인 몰입이 단순히 나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아픔을 감싸 안고 이를 치유할 수 있는데 의의를 둔다면, 우리는 학문에의 집중을 소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복은 대체 무엇일까요? 행복은 내가 생산적인 존재일 때 찾아옵니다. 생산적인 존재라는 것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준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이 생산적인 존재가 되도록 마음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새 학기 서강의 새내기들과 학생들, 교수님들과 신부님들에게 뜻 깊은 날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